피로 물든 방
마왕
그의 피부가 나를 온통 감싸서 우리는 한 깍지에 들어 있는 씨앗의 반쪽들 같다. 내가 아주 작아졌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나를 삼킬 수 있게요. 알곡이나 참깨 씨앗을 삼키면 임신이 된다는 옛날이야기 속 여왕처럼요. 그러면 내가 당신 몸 안에 들어가고 당신이 날 잉태할 거예요.
(…)
그가 절반은 꿈꾸고 절반은 깨어 있는 상태로 누워 있을 때, 나는 그의 부스럭거리는 머리카락을 크게 두 움큼 뽑아서, 그가 깨지 않도록 아주 부드럽게 그 머리카락을 꼬아 줄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빗방울처럼 부드러운 손으로 그 밧줄을 써서 그의 목을 조를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모든 새장을 열고 새들을 풀어줄 것이다. 그들은 어린 소녀들로 다시 변할 것이고, 모두 목에 그가 애정의 표시로 물어서 생긴 붉은 상처 자국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가 토끼 가죽을 벗길 때 사용하는 칼로 그의 멋진 머리카락을 모두 잘라낼 것이고, 그의 회갈색 머리카락 다섯 가닥으로 낡은 바이올린 줄을 맬 것이다.
그러면 손이 닿지 않아도 불협화음의 음악이 울려 나올 것이다. 새로운 줄 위로 활이 저절로 춤을 추면 현들은 이렇게 외칠 것이다. “엄마, 엄마, 엄마가 날 죽였어요!”
늑대 친구들
이빨이 참 크네요!
소녀는 그의 턱에 침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고 방 안은 숲에서 울리는 <사랑의 죽음>의 아리아로 가득 찼다. 그러나 현명한 소녀는 그가 이렇게 대답했을 때도 결코 움찔하지 않았다.
너를 먹기에 좋지.
소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누구에게 먹힐 고깃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그의 면전에 대고 웃으며 그의 셔츠를 찢어내어 자신의 옷이 불탄 자리에 던졌다. 불길은 발푸르기스의 밤에 죽은 영혼들처럼 춤을 추었고 침대 밑의 늙은 뼈들은 무시무시하게 덜렁거렸지만 소녀는 그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육식동물의 화신, 오직 흠 없는 육체만이 그를 달랠 수가 있다.
소녀는 두려움에 찬 그의 머리를 무릎에 놓고 그의 가죽에서 이를 잡아낼 것이며 아마도 그가 시키는 대로, 야만인의 결혼 의식에서 하듯이 잡은 이를 입에 넣고 먹을 것이다.
폭풍은 가라앉을 것이다.
폭풍은 가라앉았다. 산에는 마치 눈먼 노파가 하얀 천을 덮은 듯 눈이 여기저기 덮여 있었고, 숲의 소나무 높은 가지는 석회 뿌린 듯 눈이 쌓여 무겁게 삐걱거렸다.
눈빛, 달빛, 뒤섞인 늑대 발자국들.
모두 조용하고, 모두 멈춰 있다.
자정, 이윽고 시계가 종을 친다. 크리스마스다. 늑대인간의 생일이다. 동짓날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모두 잦아들게 하라.
보라! 그녀는 할머니 침대에서 다정한 늑대의 팔에 안겨 달콤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다.